하오취업

관장님의 예리한 지적 덕분에 나는 기억 속에서 왼손을 찾았다. 어릴 때 엄마는 몇 번씩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숟가락을 왼손에 쥐니까 일부러 오른손에 쥐어 주었던 것 같다. 왼손으로 쥐었다고 아빠가 밥그릇을 뺏어 버려 자지러지게 울던 기억도 났다.

"관장님, 저 정말 그런 거 같아요. 밥 먹을 때 숟가락 들고 많이 울었던 거 기억나요.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돼요?"

2004년 18살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챔피언에 올라 2011년 라이트플라이급 5대 기구 통합 챔피언이 된 여자 권투선수 김주희의 일화다.

남들이 오른손잡이 라고 하니까 그냥 오른손잡이로 살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쩌면 길들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직시장도 비슷하지 않을까? 남들이 학점,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등을 취업의 필수요소로 이야기하니까, 그러한 요건이 안 되는 이들은 낙담할 수밖에 없다. 막상 이력서를 적어보라 하면 인적사항, 학력사항, 병역사항을 적고 나면 다음부터 쓸 게 없다. 자격사항, 경력사항, 직무능력사항도 적어야 하는데 말이다.

난 분명히 ‘열정’이 있고 단지 자격증이 없을 뿐인데, 이력서에는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낙담하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화려한 스펙으로 본인을 드러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구직시장에서 본인을 오른손잡이가 아닌 왼손잡이로 스스로 길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력서에 한 줄 채우기 위한 스펙을 무시하라. 혹시 자유양식 이력서라면 자격증, 영어시험성적 항목을 아예 없애버려라.

기업에서는 ‘마땅히 평가할만한 것이 없어서 스펙을 본다’ 고 말한다. 그렇다면 구직자 스스로 ‘마땅히 평가할만한 것들’을 만들면 어떨까? 자격증과 어학성적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경력사항과 직무능력사항은 충분히 화려하게(?) 어필할 수 있다. 오히려 경력사항과 직무능력사항을 제대로 기술하는 것이 달랑 자격증 몇 개, 어학성적 몇 점 기재하는 것보다 취업에 훨씬 유리하다고 인사담당자들은 말한다.

‘스펙 없이 취업하는 법‘에 대해 강의를 하다 보면 꼭 듣는 질문인데, 지원분야가 명확하다는 전제 아래, 한 달이면 이력서의 경력사항을 가득 채울 경력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수님이 프로젝트A를 진행하는데, 해당 프로젝트가 당신의 지원 분야와 관련 있는 주제라면 당장 교수연구실 문을 두드려라. 외로운(?) 그분들께 인생 상담을 청하라. 그리고 상담 중에 은근슬쩍 프로젝트A의 허드렛일 담당 일꾼을 자처하라. 이렇게 당신의 이력서에는 ’프로젝트A 참여‘라는 경력사항 한 줄이 완성된다. 하지만 만약 교수님께서 필요 없다 거절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라면 교수님 연구실 들어오는 시간 맞추어 문 앞 걸레질이라도 시작한다. 프로젝트A에 참여할 때까지 말이다. 고민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이라면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고민을 위한 고민이 대부분이다. 만약 당신이 그 동안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만들지 못했다면 ‘스펙’ 때문에 고민하지 마라. 대신 그 시간에 당신의 일상을 변화시켜라. 이제부터라도 열정이 가득한 스토리로 당신의 일상을 가득 채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