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冬土)보다 차가운 취업전선에 너를 홀로 내버려둔 채 회사 일에만 몰두해온 아빠를 먼저 용서해다오. 취업이 제 아무리 바늘구멍이라 해도 너만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명문고와 명문대를 졸업한 너는 선배들처럼 좋은 직장을 쉽게 구할 줄 알았다. 열정페이, 만리장스펙, 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와 금수저, 잉여인간, 페이스펙, 문송합니다, 이생망… 취업난을 풍자한 신조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자학적, 자조적인 열패감에 빠져 내뱉는 넋두리인줄로만 알았다.
지난해 연말 엄마 생일날. “엄마, 내년엔 더 큰 선물해줄게”라며 계면쩍어하는 네 모습이 선하구나. 네가 짊어지고 있는 ‘취준생’이란 삶의 무게가 참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엄마, 나한테 과감하게 투자해봐. 엄마아빠 노후는 내가 책임질테니”라며 큰소리치던 호연지기를 본 지 오래된 것 같구나.
딸아.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아빠는 어쩌면 불평등보다 경쟁에 오히려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불평등에 따른 소외계층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러나 노력과 능력으로 희망과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불평등을 네가 감내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방관할 수밖에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구나.
아빠도 젊은 날, 고비고비마다 불합리한 교육제도와 사회적 여건을 원망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영어와 한국사, 컴퓨터, 봉사활동 등 요란스럽게 스펙을 쌓지 않아도 취업이 되었던 시대를 살았던 것이 다행스럽게만 생각되는구나.
딸아. 지금 우리는 반만년 역사상 가장 빛나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박탈감속에 불행을 얘기하고 있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경제기적을 이룬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간 곳 없고, 분열과 대립, 자학과 냉소주의, 패배주의가 만연해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사회 전체가 무력감이라는 ‘블랙홀’로 빠져 들고 있는 느낌이다. ‘청년일자리 창출’이란 명목으로 나랏돈을 1년에 2조원씩 써대면서 왜 청년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청년의 미래가 곧 국가의 미래인데 도대체 국회는 무엇하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구나.
딸아. 옳고 그름을 잘도 따지던 네가 ‘취준생’이 되면서부터 눈치를 살피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듯해서 안쓰럽구나. ‘취준생’이 뭐 별거냐? 너의 인생을 순항하기 위한 ‘워밍업’이라고 생각하면 돼. 처진 어깨를 활짝 펴고 눈을 크게 떠 보아라. 그리고 네가 갖고 있는 모든 지각을 ‘현실’이란 코드로 튜닝해라. 몸을 조금만 낮추면 길이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딸아. 그렇다고 남을 원망마라. 1차적인 원인과 해답은 너 안에서 찾아야 한다. 사회구조적인 절벽 앞에서 답답해하는 너를 탓하는 것 같아 정말로 미안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수용하거나 피해가는 것도 삶의 지혜다.
해가 바뀐 지 얼마 안됐다. 새해엔 포기와 절망보다는 도전과 희망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성공과 실패를 논할 나이가 아니다. 쉽고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해보도록 해라. 정상(頂上)만 보고 걸으면 등산이 힘들어진다. 오솔길도 걷고, 가파른 절벽도 오르고, 평탄한 능선도 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산(山)의 숨소리가 들리고 철 따라 들려주는 숲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빠는 너의 세대가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가 아니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NO포세대’로 반전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응원할게. 힘내라, 사랑하는 우리 딸. 응답하라, 20대 ‘취준생’들이여!
출처: 브릿지 경제, 박운석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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