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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합니다'..취업 길 열어주세요 등록일 : 17/05/29

“침대 반품은 어려워도 저같은 사람 반품은 엄청 쉽거든요.”

3개월 계약직으로 가구 회사에 입사한 은호원은 블랙 컨슈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한다. 사용하던 침대의 반품 요청을 하는 소비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판에 나온 말이다. 은호원은 MBC 수목 미니시리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배우 고아성이 맡은 캐릭터로, 스펙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청춘이다. 

은호원은 청소년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장학금 받으려고 잠을 줄여가며 미친 듯 공부하고,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한 우리 주변의 흔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100번이나 입사 시험에 떨어지고 “하라는 대로 했잖아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라고 울분을 토한다. 은호원은 ‘문송합니다’, 즉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며 기업에 취직하기 어렵다는 국문학과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문송합니다’는 취업 전선에서만 사용되지 않는다. 취업에 어렵다는 인식은 대학 진로 설정을 비롯한 교육의 방향을 바꾸고, 공무원 시험을 오랜 기간 준비하는 ‘공시생’을 늘려 놓는다.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바람 속에 ‘문송합니다’는 더욱 자주 사용될 것 같아 우려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학교의 특정 학과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토론과 합의에 대해 간과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염려가 있다.

정치권과 정책 담당자들이 챙겨야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등 국민의 살림살이에 대한 정책 못지 않게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매만져 주는 비전이 필요하다. 세월호 3주기를 지나며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 보장을 해 주는 존재라는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이 사회의 모든 권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의 탄핵을 시민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비전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는 기억이 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이라는데 주목해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흔히 각자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기억이, 사실은 집단적으로 구성되고 전수된다는 것이다. 기억은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이야기되고, 과거는 현재의 시점에서 되살아난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신임 대통령은 국민이 정신적으로 거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현 시점에 집단기억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갈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기댈만한 정신적 비전을 바탕으로 문화 분야의 정책도 이뤄지길 기대한다. 국정 농단이 문화 체육 분야와 연관되어 일어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국가 브랜드로 육성했던 한류 콘텐츠에 대한 방향성도 마찬가지다. 

토대와 구조를 바꾸는 정책들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삶의 질을 보장해주며,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각론들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존재인 국민이 기본적인 권리를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것이 먼저다. 

출처: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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