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은, 올라갈 때 힘을 다 써서 내려갈 때는 힘이 부친다는 그런 단순한 뜻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든 끝까지 올라가려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고산 증에 걸렸음에도 여태까지 걸어온 노력이 아까워 끝까지 오르고자 하다가 힘들게 욕심을 버리고 내려오면서 느낀 바라고 한다. 그 때 만약, 참고 올라갔으면 그녀는 건강을 잃을 뻔 했다.
한비야는 산을 오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과감히 욕심을 버릴 줄 알았다.
현재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수험생들을 보면서 이런 한비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와 다르게, 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미련 때문에 억지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안타까워서이다.
그들은 다른 재능이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그 길을 찾지 못하고 흔히 말하는 ‘대세’를 좇아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진단이다. 지금 서 있는 곳,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왜 선택했는 지 그리고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지, 이 길의 최종 지점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역시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1년 넘게 준비했는데 지금에 와서 어떻게 그만 두냐’ 하는 이유에서 ‘할 수 없이’ ‘원치 않는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것이라면 깨끗이 미련을 버리자. 물론 그만 둔다고 해서 그 노력이 헛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인가에 도전했고, 이른 새벽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바도 있을 것이며, 습득한 지식 또한 무의미하지 않은 까닭이다. 또한 ‘이 길이 아니다’는 깨우침이 있었다면 그것보다 큰 결실은 없다고 생각한다.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 길이 진정 자신을 위한 길인지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포기하는 것’과 ‘미련을 버리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포기는 ‘이 일이 하기 싫어서’ 하는 것이고, 미련을 버리는 일은 ‘이 길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선택이다. 포기는 감정에 치우쳐 충동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미련을 버리는 일은 그 순간 정말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어렵게 내리는 결론이란 것이다.
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음에도 그저 ‘미련’ 때문에 하고 있는 공부라면, 주저 없이 돌아 나오길 바란다. 분명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일이 있을 테니까.
출처: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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