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블루오션, 오신애 입니다.




이름 (한글)   오신애 생년월일   1983/06/26
이름 (중문)    주민번호   기본 비공개
성      별   여(女) 국    적   한국
거주지역   
상세주소   광주 북구 중흥2동 365-21
연 락 처   연락처를 열람하려면 로그인 하여야합니다.아직 하오산동 회원이 아니면 무료회원가입을 해주십시오
기타사항 가족관계 결혼여부 종교 취미
남녀중 째 미혼
어학/컴퓨터
컴 퓨 터   한글/MS워드 [상]파워포인트 [중]엑셀 [중]인터넷(정보검색) [상]
언어 능력   중국어 [중] 영어 [중] 
학력사항


재학기간 학교명 전공 졸업여부
~ 2002년 국제   졸업
2002년 ~ 2006년 조선 경영 졸업
경력사항   (총 경력년수 : 00년 04개월)



-. 근무기간 : 2005년~2006년 (퇴사)
-. 회사명칭 : 중국 심양 기원디지털유한공사
-. 담당업무 : 셋탑박스 동북삼성 진출을 위한 시장 조사및 마케팅 활동
-. 직급 : 평사원
-. 연봉 : 위엔 월급



학점이 인정되는 교환 학생으로 4개월 남짓 심양에서 인턴쉽을 하였습니다. 셋탑박스에 대한 마케팅 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에서 부터 실제 판매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하였습니다.
취업희망사항



-. 희망근무지1 : 산동성 > 청도
-. 희망근무지2 : 광동성 > 광주
-. 희망연봉/월급 :   면접 후 결정
-. 희망고용형태 : 정규직
-. 희망업직종 : 유통/무역/판매, 상품기획/MD, 마케팅/마케팅기획/전략, 무역/수출입관리
자기소개서




21세기 블루오션 오신애 입니다 <도전,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나의 어린시절 > “해보지 않고 망설이지 말고 부딪쳐 보고 아파해도 늦지 않다"는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겁먹어 울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조용히 뒤 안장을 잡아 주시며 자전거를 타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도, 친구와 싸우고 왔을 때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도 아버지께선 항상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겁을 먹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조금만 용기를 가지면 다 할 수 있단다’ 아마 그때였던 거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걱정보다는 기대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난 안돼 보단 나라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 , 학창시절 및 성격 > 초등학교에서 골목 대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제 삶은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사고로 편찮으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생계를 책임지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가사일을 돌보게 되면서 동생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던 철 없는 시골 소녀는 사라지고 동생들의 언니로 누나로 부모님의 자식으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배워갔습니다. 그러면서 중학교 시절 3년간 또래 상담사로 친구들의 고민 해결사가 되고 재활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함께 사는 삶을 몸소 체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이해심과 배려심으로 대학생 때는 학생회 활동을 시작 하였습니다. 과 축제를 비롯한 과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과 발전을 위해 밤잠을 설치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과 교수님과의 연대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과 교수님을 이해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대학 시절 4년간은 가장 나답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울 수 있었던 가장 행복 했던 시절 이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지나친 열정에 다른 것을 돌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런 열정으로 힘들게 중국을 선택 하였고 중국을 정복하기 위해 중국에서 제 꿈을 펼치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좌절은 있지만 포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제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경험이 재산이다 - 나의 포인트 마일리지 > 대학 진학과 동시에 부모님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선언 하였습니다. 전공과 관련있는 일을 하나하나 배워보자는 심산으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음식점 서빙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터라 지치고 힘들었지만,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다시금 당당하게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경영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일을 마칠 때 쯤에는 사장님에게 식당 발전에 대해 조언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3년 “친절사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명절을 이용하여 백화점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물건의 유통 경로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밤잠을 못 이루던 생각이 납니다. 이런 열정 때문이었는지 아르바이트를 마치면서 매니저로부터 같이 일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친구와 젤리슈즈를 팔기위해 시장조사에서부터 판매까지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4학년이 되어서는 중국에서 교환 학생을 하면서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또한 기회가 되어 방송국에서 직접 홍보 영상물 제작에 참여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2학기때는 심양에서 해외 인턴쉽을 하였습니다. IT회사에서 마케팅 사원으로 셋탑박스 동북시장 진출을 위한 마케팅 조사를 실시 하였고, 광고물 제작에서부터 바이어들과 교류하면서 통역을 하고 각종 무역관련 사항들을 습득하였습니다. <변화는 산소와 같다.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 10년후엔 이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보다는 10년후에도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고 그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질 무렵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언젠간 그 나라를 정복 하리라. 다소 단순한 생각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중국에 대한 열정이 중국을 선택하게 되었고 아침잠을 줄여가며 회화를 공부하고 제 삶의 제 1의 우선순위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단 생각을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에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기회를 잡을 준비도 돼있습니다. 제 이름은 오신애입니다
 
위 정보는 개인이 제공한 자료이며, 하오산동은 이로 인하여 발생되는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